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및 연극.뮤지컬.드라마)



1920년대를 잘 모르지만 내가 가장 화려하다고 느끼는 시대는 바로 1920년대이다.
채플린의 영화 등을 통해서 간접 경험한 1920년대의 복식은 너무나 아름답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으로 번 돈으로 풍요와 환락이 넘쳤던 시기. 다시 더 큰 전쟁이 일기 전의 찰나의
화려한 시기.
짧아진 여성들의 머리와 엉덩이 아래로 찰랑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원피스 중 가장 좋아하는 2가지 중 하나가 바로 플래퍼룩 원피스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오는 예술가들을 모두 다 알 수 없었지만,
예술가의 시각으로서 그 당시를 동경하는 영화와는 다르게,
스타일에 대한 나름의 동경으로도 이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눈도 즐거웠던 영화다.

우디알렌의 그 신경질적이고도 예민함은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제 많이 낭만으로 희석된 것 같다.
영화 초반에, '과거에 대한 동경 즉 추억은 과거는 아름다워~라는 것은 결국
현실부정 우울증환자의 로맨티시즘에 불과하다는 말이 어찌나 무릎을 치게 만드는지 모른다.
그가 가진 예술가로서의 열등감을 이렇게 두괄식으로 말해놓고
판타지를 녹여 풀어낸 다는 것이 정말 우디 알렌 답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하지만 우디 알렌의 영화 중 기억에 크게 남을 만한 영화라기 보단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이야기로써 상품화와 판타지를 극대화 시킨 이 영화에
프랑스관광청이 상이라도 줄 판아닐까?

재밌는건 스콧 피츠제랄드와 헤밍웨이의 대조적인 캐릭터였다.
피츠제랄드의 소설은 달랑 '위대한 게츠비'만 읽었지만, 비루하고 꼬인 사랑이야기에 이 보다 더 나은 작품이 어디있을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 작품으로 느낀 피츠제랄드의 섬세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모습에 반하여
친구로서 헤밍웨이는 굉장히 무모할 정도로 마초적이다.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전쟁이 있기 때문에 먹고사는
종군기자같달까.
'토르'에서의 철없고 열등감 투성이의 루키를 연기한 톰 히들스턴이 당시의 머리를 한 멋쟁이 피츠제랄드를 연기한
것이 너무나 신선하다. 그의 부인인 젤다 피츠제랄드를 연기한 배우는.. 분명 '스콧필그림'에서 못생긴 드러머로
나왔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름답고 예쁘다'란 수식어를 달고 나오는데. 그러니 더 이 영화가 SF같이 느껴졌달까.
1920년대 그 당시가 주는 이미지와 더불어 참 재밌다.
또한, 애드리안 브로디가 깜짝 출연처럼 나와 멋드러지게 스페인산 불어가 섞인 영어를 하는 '살바도르 달리'로 나오는
씬에는 달리가 친구라며 소개시켜주는 루이스 브뉘엘이 등장하는 순간.
하~ 하고 깜짝 놀라웠는데, 정말 두 사람이 친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같이 당대에 만나야하고 교류를 해야하는 두 사람이 아니었나 싶어 즐거웠다.
게다가 주인공 길이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하는데도 달리와 루이스 브뉘엘 그리고 만 레이는 전혀 미동도 없이
맞다고 인정해준다. 진정 초현실주의의 대가들인 것이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여배우들인 레이첼 맥아덤즈와 마리온 꼬띨리아르
두 배우 모두다 얼굴선이 짙지만 귀여움과 지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선이 굵은 편이라 고전적인 의상이나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닮고 싶다고 해야하나. 이번생애에 핵이라도 없애는 혁혁한 공을 세운다면 다음생이 주어진다면 그리 태어나려나 모르겠지만
요근래 좀 노쇄한 애슐리 쥬드와 아직은 짱짱한 샤를리즈 테론과 더불어 너무나 부러운 분위기의 두 여배우를
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반가웁다. 
우디알렌은 정말 복받은 사람이다.



영화는 지적 허영과 열등감 사이를 유영한다.
1920년대의 작가들을 동경하는 현대의 극작가이자, 할리우드 나부랭이 돈되는 시나리오나 쓰는 자신의 열등감을
표출하는 주인공 길 펜더이자 우디알렌 자신.
주인공 길은 여자친구에게 정말 지적인 자신감 충만한 인물이었겠지만, 폴이라는 지적허영투성이의 남자를 만나고
한마디로 까이기 싫어 발버둥치다 환상에 빠져들고 만다.
과연 그곳이 여행온 파리였으니 그나마 다행아니었을까.
똑똑한 남자에 대한 환상이 나도 있으니까, 사실 이런 상황 너무나 재밌다.
그 golden era의 예술가들 사이를 다니며 체화한 아드리안느라는 허구의 인물이 주인공 길과 함께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19세기 모네와 드가의 시대.
그녀가 말하는 golden era의 드가는 이 시대는 상상력이 실종되고 형편없다며 르네상스 시대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또한, 드가의 시대에서 그냥 살고 돌아가고 싶지않다는 1920년대의 그녀에게 주인공 길은
현실이 되면 그 또한 지루하고 형편없어질 거라고...

영화는 공화당출신의 굳건한 재산을 가진 미국부자의 사위가 되기를 조롱하고
에펠탑이 보이는 냄새나는 옥탑방 야경을 보며 소설을 쓰며 살겠노라고 이야기한다.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환상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흔한 싸이월드 속 여자들이 찍어대는 사진들 속의 이야기들도 모두다
이 곳 파리가 주는 그런 현실부정의 낭만이 아닐까.
허나 그것이 현실이 되면 또한 지루하고 형편없어질 거라고...

영화는 사실 그 전에 멈춘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파리의 비를 같이 맞아줄 인연을 만나면서..
내가 좋아하는 우디알렌 영화 중 애니 홀같은 찌질하지만 지적인 남자의 귀여운 로맨스도 아니고
돈을 갖고 튀어라 같은 웃음도 없으며, 에브리원 세즈 아이러브유 같은 속사포에 흥겨운 낭만도 없지만.
시니컬한 수다쟁이 우디알렌은 자신의 지적 열등감을 이렇게 당당하고 낭만적이게도 풀어낸다.
똑똑한 남자가 사랑스러운 대다수의 여자에게
그는 바짓가랭이가 헐렁한 몇 안되는 섹시한 늙은이일지도 모르겠다.(물론 난 전혀 공감안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나도 왠지 일상성이 넘치는 북촌인 우리 동네를 찍어보고 싶어졌다.
사실 깔린 음악스타일이나 초반 패닝도 하지 않는 정지된 카메라 워크도 상당히
홍상수의 '북촌방향'과 흡사함이 느껴지긴 했다.

올해 유난히 1920년대가 화두이다.
불행하게도 내가 가진 플래퍼룩 원피스는 봄원피스라 입을 수도 없네.
민소매로 하나 사봐야겠다. 머리도 짧게 자른김에...
이것이 진정 영화를 소비하는 자세 중 가장 소극적인 1단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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